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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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늘나라 2 3,380


양심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의 마음이다. 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양심은 인간에게 주님을 나타내는 도구이다. 하나님은 양심을 인간에게 주셔서 이분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양심을 인간에게 주셔서 인간에게 이분을 말씀하신다. 이 하나님을 나는 양심을 주셔서 말씀하시는 주님이라고 한다.


 
이분은 이렇게 인간에게 이분을 드러내시는데 인간은 이분이 하시는 일인지도 모르고 양심을 거슬린다. 양심은 거슬린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심은 항상 있어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적한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게 있는 주님의 법이다. 이 법이 우리에게 있는 한 이 법을 거슬리면 인간은 언제나 고통을 받는다.


 
인간은 양심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 양심은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기 때문에 인간의 양심은 인간에게는 등불과도 같다. 이분이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장치를 해야 만이 인간이 되는 것을 잘 아신다. 인간에게는 인간을 버리는 이상한 야수와 같은 기질이 있음을 아신다. 인간을 버린다는 얘기는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말은 정말 인간에게는 죽음과 같다. 인간은 정말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인간이 아닌 이상한 야수가 되어 버린다. 인간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이주 이상하고 이상한 존재가 된다. 이 같은 것은 바로 인간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때 일어난다. 이 양심을 버림은 하나님의 법을 버림과도 같다. 인간이 이분을 부인한 것과 같다.



 
양심을 버림은 일차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직임을 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어릴 때부터 이 양심을 훈련 받는다. 이 양심을 아이 때부터 연단 받으면서 자라난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인간은 어린 아이 때부터 인간으로서의 직임을 다하지 못한다. 이 세상에서도 이 직임이 존재하여 인간으로서의 직임을 다하지 못하면 이 사회가 이 사람을 우습게 여긴다.



 
이 세상에서도 이런 양심이 인간으로서의 고급 수준을 달하게 하는데, 아무렴 이 세상 밖에서는 얼마나 더 그러할까?? 이것은 이분의 나라는 이 양심이 확실히 작동되는 나라라는 얘기이다. 양심은 이 세상에서도 이분을 드러내지만 이 세상을 떠나서도 이분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나라는 양심을 정화시킨 자만 들어간다.



 
양심을 정화시킨다는 뜻은 선한 양심을 갖는다는 뜻이다. 이 양심에는 이상한 양심도 있다. 이것은 인간의 문화로 인하여 화인 맞은 양심이란 뜻이다. 화인 맞은 양심은 어떤 것일까? 이것은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이런 말은 인간의 마음에 이것을 이해하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기준은 성경에만 존재한다.



 
아버지는 이 기준을 아버지의 말씀으로 기록해 두셨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다. 이 성경은 인간에게는 아주 아름다우신 주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책인데 이 책에는 인간의 양심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양심은 아주 정교하게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정교한 아버지의 말씀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고 아주 이상한 방법으로도 이용 되지만 원래의 말씀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의 직임을 다하고 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높이는 양심으로 인간을 높이기 위해서이다. 이런 양심은 인간을 인간의 수준으로가 아닌 이분의 수준으로 인간을 높인다. 인간은 이분의 수준으로 높임을 받고 이분과 함께 이분의 나라에서 함께 사는 것이 인간의 수준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마음으로 인간에게 자신의 아주 정교한 수준의 마음을 알게 하신다.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는 선한 양심이다. 이 선한 양심은 아주 이뻐서 인간에게는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양심으로 비친다. 이런 양심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주님의 방법이다. 이분이 지니신 마음이 아름답고 깨끗하다. 이런 마음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신 이분의 성령이 임재하실 때 가능하다.



 
인간은 여러 가지의 양심을 지닌다. 이런 양심에는 다양한 인간의 색깔이 묻어 있어서 이상하게도 이렇게 아름다우신 주님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렇게도 합리화 하고 저렇게도 합리화 하고... 이리 저리 이 양심을 자꾸만 더럽힌다. 아예 양심이 없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이렇게 양심이란 정말 인간에 의해서 없어지고 약해지고 합리화 된다.



 
이렇게 약해지고 합리화 되면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세상을 누리기 어려워진다. 이 세상이 이렇게 이상해진 것은 주님의 탓이 아니라 인간 양심이 화인 맞은 탓이다. 이분의 말씀은 이렇게 인간에게 자주 가르치건만 아주 화인 맞은 인간의 양심은 정말 약해 있어서 아무나 이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 이분의 성령이 임재하실 때에만 가능하다.


 
이분의 성령이 임하시면 우선 양심이 살아난다. 이 양심은 이래라 저래라 이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예리하게 인간을 쪼개고 나눈다. 이렇게 인간은 아버지의 양심을 받아들이고 이분의 수준으로 하나씩 달라진다. 이분이 시키시는 대로 인간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분은 아주 이쁘게 인간을 아름답게 정화해 나가신다.



 
이것이 인간에게는 아주 어려운 것이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악을 사랑하는 인간의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양심이 무어라고 말해도 자꾸 일부러 이 양심을 어긴다. 이런 버릇이 일순간에 바꿔지려니 어렵다. 이래서 이분은 인간의 버릇을 이렇게도 이용하셔서 아주 인간의 버릇이 일어나지 못하게도 하신다.



 
어떻게 이렇게도 하시는가? 이런 주님의 방법을 알면 이분의 지혜에 놀라고 만다. 이분이 이용하시는 버릇은 인간에게는 아주 흥미 있고 즐거운 일이지만 이분에게는 괘씸하고 아주 불쾌한 버릇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런 못된 버릇을 없애기 위해서 잠시 이 버릇을 이용하신다. 이렇게 하면 이해가 되려나?


 
아주 아름다운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는 자꾸 이 아이의 스타일로 사는 것을 좋아 한다고 하자. 이런데 이분의 마음에는 안 들고 아이만 좋아 한다고 하자. 이럴 때는 이렇게도 하신다. 아이 마음대로 살게 허용하신다. 이런 아이는 이렇게 사는 것을 좋아 하다가 이분이 우시는 날에는 이 아이도 운다. 왜냐하면 이분이 우시면 인간은 울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는 지쳐서 아이 마음대로 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어리석은 인간에게는 엄청 호감이 가는 방법이다. 왜냐 하면 마음대로 살게 하니까 말이다. 이런 방법은 아주 안 좋은 방법이지만 어떤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매우 경종을 울리는 방법이 된다. 이런 방법을 쓰면 우는 자들이 생긴다. 이런 자들은 정말 지혜로운 자들이다.


 
아주 겁이 나고 이분이 자기를 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이분이 이렇게 방종하게 내버려 둘 리가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이상하고 이상해도 인간에게는 이쁜 영감이 있어서? 왠지 겁이 난다. 마치 폭풍 전야처럼 조용하다. 이래서 알아서 우는 자도 있다. 아버지여 왜 내게 이렇게 내버려 두시나이까? 이런 자의 마음은 정말 아름다운 마음이다.


 
이런 자가 있는 가하면 아닌 자도 있다. 이 세상은 천차만별이다. 이 세상에서도 이렇게 인간의 양심이 각각 다르듯이 아버지의 나라에서도 인간의 양심은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래서 인간은 아버지의 나라에 가서도 이분의 상급이 각각 달라서 이분에게 가까이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멀리 있는 자들이 있다.


 
이런 마음이 드니 이 몸은 자꾸 이쁜 마음이 그리워진다. 아버지의 마음에 맞지 않으면 자꾸 아픈 마음을 주셔서 이 몸이 이분의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과 마음을 지니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런 양심을 선하고 예리하게 하셔서 이분이 싫어하시는 일은 안 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린다. 이것을 나는 언제나 기도한다. 이분이 성령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가장 좋다. 이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이분의 마음이 전달되어서 이분의 마음에 맞지 않은 것은 아주 싫어하게 된다. 이래서 우리는 이분과 하나가 된다. 이분은 우리의 마음에 아주 많이 가르쳐 주신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이런 양심의 소리로 들린다. 이 양심의 소리는 이분의 말씀에 다 기록되어 있다. 성경은 알면 알수록 이분의 말씀이 우리에게는 양심의 소리로 들린다.


 
이제 이분의 말씀을 계속 읽으면 이분의 말씀을 양심을 통해 듣고 이분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이분의 수준이라 하면 이런 의미이다. 이분의 성품에 참여하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여케 하신다고...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의 형상을 본받는 장성한 분량이라고 말한다. 이 분량까지 우리를 자라게 하신다.


 
이렇게 자란 인간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아름답게 빛나게 되리라. 이분이 우리 아버지이시다. 이분을 따라 살면 우리는 정말 아름다운 양심을 지니게 된다. 이 양심은 성령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이렇게 새 마음, 이렇게 새로운 양심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분을 나타내게 하신다. 이분이 이런 일을 우리에게 하신다. 이제도 언제나 매일 같이 말이다...


아버지 이 글을 사용하시고 지켜주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Author

Lv.11 11 하늘나라  실버
70,940 (49.5%)

내가 영원히 나의 주 여호와를 송축하나이다...

Comments

10 ..........
못 읽겠다!!
넘 많아... 
24 명랑!
헉~~ 완죤 설교분량이닷!
신학교 들어가시지 그러우. ㅋㅋㅋ~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이유 중 하나에
'인간의 양심이 그것을 안다' 는 것이 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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